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 (문단 편집) === 기계/전자 === *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원래 트랙터를 만드는 업자였다. 그는 트랙터 산업의 대성공으로 페라리를 구매했는데, 계속해서 고장이 나자[* 하도 자주 망가져서 참지 못한 그는 결국 직접 차를 뜯어봐서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페라리 차량의 [[클러치]]가 자신의 트랙터와 동일 제품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보고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해당 클러치에 대한 문제점을 알려주고자 엔초 페라리를 찾아갔다가 능욕을 당하고 분노해 스포츠카 산업에 뛰어들었다는 설도 있고, 본인 스스로 여기기에 은근 내부 구조가 단순해 이 정도면 나도 만들 수 있겠다라고 생각해 시작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전자가 정설이라고 여겨진다.] 페라리의 창업자였던 [[엔초 페라리]]에게 자신이 구입한 페라리 차량의 문제점을 따지러 갔는데 오히려 엔초에게 "트랙터나 만드는 주제에 뭘 아느냐"며 무시당하자, 이에 [[극대노]]한 그는 직접 스포츠카를 만들기 위해 [[람보르기니]]를 세웠다. 이에 따라 이 회사의 슬로건은 '''무조건 [[페라리]]보다 빠른 차를 만들자.''' 그리고 현재는 두 회사 모두 슈퍼카 제조의 최고봉으로 인정받으며 경쟁을 하고 있다. 후술할 포드와의 일화를 보면 엔초 페라리는 운전 실력과 개발 능력만큼이나 [[오지랖|다른 사람들을 열받게 만드는 능력 또한 출중했던 듯 하다.]] * 1960년대 미국의 [[포드]]사는 레이싱 산업 진출을 위해 [[페라리]]를 사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합병 계약서에 포드가 페라리의 레이싱 분야에 간섭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있는 것을 본 페라리의 창업자이자 회장 [[엔초 페라리]]는 포드 사는 '''대중적이고 재미없는 차나 계속 만들라'''며 --또-- 도발함과 동시에 포드를 통수치고 [[피아트]]에 인수되었다. 그에 빡칠대로 빡친 포드는 '''타도 페라리'''를 외치며 [[포드 GT40]]을 만들어 기어코 [[르망 24시]]에서 1등부터 3등까지 차례대로 들어오는 [[자업자득|원투쓰리 피니쉬를 해가며 페라리를 물먹였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바로 [[제임스 맨골드]]감독의 2019년작 [[포드 대 페라리]]. * [[람보르기니]]의 [[재료공학]] 부서에서 일하던 어느 [[호라치오 파가니|아르헨티나 출신 공학자]]는 [[람보르기니 쿤타치]]를 설계하면서 [[탄소섬유]]의 대량생산을 위해 [[오토클레이브#s-4|오토클레이브]]의 도입과 탄소섬유 전문 부서의 설립 등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나, 람보르기니로부터 '''[[페라리]]가 쓰지 않으니, 우리도 굳이 쓸 필요가 없다'''며 거절당하자 람보르기니를 퇴사해 자신의 이름을 딴 슈퍼카 회사를 세웠다. 그것이 바로 '''[[파가니]]'''의 시작이다.[* 오직 타도 페라리만을 고수했던 람보르기니의 정책이 오히려 (괜히 들여왔다가 돈만 날리게 되는) 생소한 신기술의 도입을 꺼리는 보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고, 결국 자신들도 페라리와 비슷한 결과를 낳게 된 셈이다.] * [[페르디난트 포르셰|체코 출신의 어느 기술자]]는 [[메르세데스-벤츠|벤츠]]에서 일을 하다 '''내가 꿈꾸던 자동차를 찾을 수 없었다'''고 생각해 벤츠에서 나와 직접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현재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는 회사들 중 두 곳인, '''[[폭스바겐]]과 [[포르쉐]]의 시작이었다.'''[* 다만 폭스바겐의 설립은 포르셰 박사의 자발적인 의향이 아닌 [[나치당]]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폭스바겐#s-2|해당 문서]] 참조.] * 미국 굴지의 항공기 제작사이자 [[방위산업체]]인 [[보잉]]의 창립주 윌리엄 E. 보잉(William Edward Boeing, 1881~1956)은 당시 비행기의 발명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고, 1910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American Air Meet'이라는 곳에서 비행기를 타보려 했으나 '''자리가 하나 뿐인 비행기라 타지 못했고,''' 5년 뒤인 [[1915년]]에 유니언 강에 조종사 [[http://www.helenahistory.org/Terah-Maroney.htm|테라 마로니]]에게 "날개에 붙어서라도 탈테니 비행기에 태워달라"고 사정을 하여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 본 뒤에 한 말이 "자리도 부족한데 태워주시느라 수고 많았소.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 하겠다|그냥 제가 뚝딱뚝딱 조립해서 타는 게 낫겠소이다]]."'''그 뒤에 시애틀로 돌아와 보잉을 차렸다고 한다. 그리고 보잉은 요즘도 [[에어버스]]와 함께 비행기 제작사 양강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1950년대 중반까지 민항기 분야에서는 [[맥도넬 더글라스|더글라스]]에 밀렸으나, 1958년에 보잉이 최초의 제트 여객기로 [[보잉 707]]을 발매하며 더글라스를 역전하다 못해 1997년에 아예 더글라스를 합병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최근 [[보잉 737 MAX]]의 [[보잉 737 MAX/결함|기체 결함 사태]]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고, 군용기, 우주 분야의 경우 역시 [[KC-46]]이나 [[T-X 프로그램]], [[CST-100]], 그리고 [[SLS 로켓]]을 제외하면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다. ] * [[일론 머스크]]는 학창 시절부터 로켓과 화성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2001년에는 수분보급용 젤에 미니 온실을 만드는 '화성 오아시스'를 화성에 보낼 계획까지 세웠지만 [[ULA]] 등 우주산업계의 각종 고인물들의 로켓이 모두 비싸서 실패했다. 러시아에서 핵탄두를 제거한 깡통 ICBM을 중고로 구매해 그걸로 화성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했다가 퇴짜를 맞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계산기를 두들기다 '''"로켓을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비벼볼만 한데?"'''라는 생각으로 [[스페이스X]]를 창업했다. 물론 처음 만들어보았던 소형 발사체 [[팰컨 1]]을 3번이나 말아먹어서 거지가 될 뻔했지만[* '''농담이 아니라 말 그대로 파산할 뻔했다.''' 이 당시 너무 쪼들렸던 나머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전용기조차도 타기 아까워서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타고 다녔을 정도였다.], 투자금을 바닥까지 끌어모아 겨우 시도한 4차 발사를 성공하면서 살아남았다. 결국 팰컨 1을 통해 능력을 증명한 스페이스 X는 본격적으로 나사에게서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받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2022년 현재는 [[팰컨 9|세계 최초로 로켓을 재사용하고]], [[팰컨 헤비|화성으로 자동차를 쏘아올리고]], [[드래곤 V2|NASA 우주비행사들의 우주비행을 책임지는]] 엄청난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2024년을 목표로 [[새턴 로켓|새턴 V]]와 [[SLS 로켓|SLS]]를 모두 쌈싸먹는 [[크고 아름다운]] [[스타십(스페이스X)|우주여객선]]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미친듯한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 [[오클리]](!)의 사장이기도 한 카메라 애호가 짐 쟈나드는 기존의 카메라가 마음에 들지 않아 개선점을 발견하고 끝끝내 카메라를 개발하고 회사를 차리는데 이 회사가 [[레드(기업)|레드 社]]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처음 개발한 카메라는 현대 디지털 시네마 카메라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레드 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